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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명 숨진 채스워스 메트로링크 충돌사고 "근무중 문자메시지 기관사 때문"

지난 2008년 9월 25명의 목숨을 앗아간 채스워스의 메트로링크 충돌사고는 기관사의 부주의로 발생한 것으로 최종 확인됐다. 16개월간 채스워스 사고를 조사해 온 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는 21일 당시 사고는 적신호에서 통근열차를 멈춰야 했던 기관사 로버트 산체스가 휴대폰으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다가 시간을 놓쳐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유니온퍼시픽 소속 화물열차와 충돌한 통근열차는 모든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메트로링크 통근열차와 화물열차는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155명의 사상자를 내 가주 역사상 최악의 열차사고로 기록됐다. 사고를 낸 기관사 산체스도 현장에서 사망했다. NTSB는 만약 열차에 자동제어장치가 설치돼 있었다면 당시의 사고는 피할 수 있었다며 사고의 재발을 방지하려면 전국의 모든 통근열차의 운전석에 카메라를 설치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번 보고서에 대해 피해 가정들을 대신해 메트로링크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 중인 제롬 링글러 변호사는 "이번 보고서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메트로링크가 산체스의 근무 중 문자전송 습관을 알면서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점"이라며 "승객들의 안전을 위해서 지금이라도 관계 당국은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사고 발생후 메트로링크는 2억100만 달러를 들여 오는 2012년까지 전 열차에 자동제어장치를 설치하는 계획을 추진중이다. 문진호 기자

2010-01-22

채스워스 메트로링크 충돌 1년···안전 개선 '지지부진'

채스워스 메트로링크 열차충돌 사고가 발생한 지 1년이 다 돼 가지만 열차 시스템을 현대화시키는 프로젝트가 더디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LA타임스는 높은 비용 문제로 메트로 링크 시스템 개선안이 늦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인공위성을 이용해 수 백 마일의 철로 위에 있는 모든 열차의 위치를 파악하는 시스템과 위급상황시 자동으로 열차를 정지시키는 시스템 지휘실에서 기차를 원격 조정하는 시스템 등을 장착하려면 약 2억달러의 예산이 든다. 하지만 메트로링크가 현재 확보한 예산은 7500만달러. 설상가상으로 경기 침체와 계속해서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개스값은 시민들의 열차 이용을 기피하게 만들고 그 결과 지난 분기 운임수입은 예상치 보다 무려 140만달러가 줄었다. 반면 지난 수 십년간 크고 작은 열차 사고로 인해 보험료는 100만달러가 인상돼 예산이 빠듯한 상태다. 보험 기록에 따르면 열차와 자동차 간의 사고 열차와 보행자 간의 사고는 매달 각각 3.25건과 3.4건씩 발생했다. 2012년까지 남가주 지역 운행 열차에 우선적으로 설치될 예정인 비디오 카메라도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철도 노조는 비디오 카메라로 기관사를 감독하는 것이 과연 효과가 있을 것인지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한편 기관사들의 사생활 침해 감독관 직권 남용 현상이 생겨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조는 또 기관실에 의무적으로 두 명의 기관사가 배치시키는 것도 과도한 근무시간을 초래할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지난해 충돌 사고에서도 기관사들의 근무시간이 문제로 제기됐다. 하지만 메트로링크 측은 시간이 좀 더 걸릴 뿐이지 개선 작업은 계속해서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메트로링크는 기관실에 두 명의 기관사를 배치하고 열차 충돌 위험성이 높은 교차로 수십 곳에 안전장치를 설치해 안전 규정을 강화시켰다고 설명했다. 한편 지난 해 9월 12일 채스워스 지역에서 발생한 메트로링크 열차충돌 사고는 통근 열차가 유니온퍼시픽 소속 화물열차와 충돌하면서 25명의 사망자와 130명의 부상자를 내며 가주 역사상 최악의 사고라는 기록을 남겼다. 이두형 기자

2009-09-09

기막힌 '행운·행운' 2005년 글렌데일 열차사고 생존 남성, 채스워스 충돌 목부상 그쳐 '기적 생존'

대형 참사 이후 드러난 '뒷 이야기'들은 잔인하도록 냉정하다. 삶과 죽음의 간격이 그렇게나 좁았던 가 싶은 탓이다. LA타임스의 스티브 로페즈 칼럼니스트는 17일 '2번의 사고 생존자 자신의 운명을 다시 생각하다'란 제목의 칼럼에서 2005년 글렌데일 열차사고에 이어 12일 채스워스 열차사고를 모두 당하고도 살아남은 리처드 마일스(58)씨의 기적같은 생존담을 소개했다. 마일스씨는 전날 이 신문이 한인 여성 미셸 린트너씨의 입을 통해 보도한 그녀의 남편 그레고리 린트너(48)씨〈본지 9월17일자 A-1면>와는 '엇갈린 운명'이다. 린트너씨는 마일스씨처럼 2차례 사고를 모두 겪었지만 이번 사고에선 살아남지 못했다. 칼럼은 사고후 목에 철심을 박는 대수술을 받고 회복중인 마일스씨와의 병상 인터뷰를 통해 사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날도 마일스씨는 3년전 사고 이후 세웠던 자신만의 열차 승차 '안전수칙'을 지키려 노력했다고 한다. 첫번째는 열차의 마지막 차량에 탈 것. 충격이 가장 적은 탓이다. 또 진행 방향으로 등을 돌린 좌석에 앉으려 노력했다. 충격시 탄성으로 몸이 앞으로 튕겨져 나가는 것을 막기위함이다. 하지만 이날은 2가지 수칙 모두 지키지 못했다. 사람이 너무 많아 2번째 차량에 타야 했고 좌석 또한 2층으로 타협을 봐야 했다. 꺼림칙 했지만 그는 1주일도 채 남지 않은 가족과의 하와이 휴가에 대한 기대로 불안을 지웠다. 그러다 갑자기 '쾅' 하는 굉음과 엄청난 충격이 전해졌다. 곧바로 몸이 붕 뜨더니 앞 좌석을 뚫고 지나갔고 목에 심각한 부상을 느꼈다. 마일스씨는 글렌데일 참사 당시엔 차량이 급정거하는 소리와 미끄러지는 느낌으로 어느정도 충격을 예상할 수 있었지만 이번엔 예고없는 충돌이었던 탓에 사상자 규모가 더 컸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2번의 사고 이후 또 다시 열차를 탈 것인지 그의 선택을 물었다. 그는 "신중히 생각 해봐야겠다"고 당장 대답을 피했다. 하지만 마일스씨의 아내는 "내가 매일 운전해서 출퇴근 시킬 것"이라고 열차 승차를 적극 반대했다. 만약 그래도 마일스씨가 열차를 고집한다면 어떻게 하겠냐는 질문에 그녀는 한마디로 일축했다. "그럼 남편은 걸어가야 한다." 정구현 기자 koohyun@koreadaily.com

2008-09-17

기막힌 '행운-불운' 한인 여성의 남편…채스워스 열차 충돌로 끝내 사망

"지난번엔 살아 돌아왔는데…. 이제 더이상 남편을 만질 수 없다니 이해할 수가 없어요." 지난 12일 채스워스 지역 메트로 열차 충돌사고로 숨진 한 남성의 안타까운 사연이 심금을 울리고 있다. LA타임스는 16일자에서 사고 사망자 그레고리 리트너(48.시미밸리)씨의 기구한 운명을 한인 아내 미셸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소개했다. 리트너씨는 지난 2005년 글렌데일에서 발생한 열차-차량 충돌사고 생존자다. 당시 그는 사고 사망자 11명중 8명이 발견된 차량안에 있었음에도 몇군데 긁히고 멍만 들었을 뿐 멀쩡히 걸어나왔다. 뿐만 아니라 부상당한 여성을 구조대가 올 때까지 지켜줘 '영웅'이라고 불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에게 행운은 두번 찾아오지 않았다. 지난 12일 '상상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그가 또 다시 열차 사고를 당했을 뿐만 아니라 이번엔 생존자가 아닌 사망자 명단에 포함된 것이다. 날벼락 같은 소식에 미셸씨는 3년 전 사고 이후 남편이 겪어야 했던 남 모를 아픔들을 눈물 속에서 털어놨다. 사고 이후 TV에서 충돌 장면만 봐도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 정도였다. 또 당시 사고를 일으켰던 용의자 후안 마누엘 알바레스의 사진이 실린 사고 기사를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녔으며 그의 재판과정을 빼놓지 않고 모니터했다. 미셸씨는 "남편은 결코 당시 사건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며 "용의자 사진을 품에 넣고 다닌 것은 아마도 자신의 인생을 뒤바꿔놓은 사람에 대한 '증오'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욱 주변을 안타깝게 하는 것은 사고 이후 감정적인 코마 상태까지 빠졌던 그가 최근 많이 호전되던 차에 참사가 발생한 점이다. 그간 열차를 타지 않던 그는 승객들 속에 '녹아들 수 있는' 열차만의 출퇴근 분위기를 즐기면서 독서를 할 수 있다며 다시 열차로 출퇴근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리트너씨와 미셸씨 두 사람은 대학시절 만났다. 리트너씨가 미셸씨에게 영어를 가르쳐 주던 것을 계기로 사랑을 키워오다 졸업 1년 전 결혼했다고 한다. 미셸씨는 리트너씨를 자신을 공주처럼 받들던 남편이라고 회상했다. 또 야구를 좋아하는 아들 앤드류(15)를 위해선 여름마다 전국의 야구장을 여행할 정도로 자상했다. 사고 직후 부상과 내적인 분노와 싸우면서도 가족들에게는 항상 웃는 얼굴로 대했다고 한다. "그는 그간 거짓말을 많이 했어요. (사고를 잊고) 그가 평범한 생활로 돌아오길 바랬던 내 마음을 배려했기 때문일 거에요." 남편이 남긴 사랑과 배려는 아내의 눈물이 되어 떨어졌다. 정구현 기자 koohyun@koreadaily.com

2008-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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